[기획 포스트] 미국의 경제 불황 역사: 1930년대

2020. 9. 4. 16:52투자 생각

대공황 기간 동안 한 목사가 뉴욕 거리에서 실업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 이미지 출처: edition.cnn.com

 

이 시기 미국은 경제 후퇴(Recession)나 불황을 넘어선 경제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겪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는 1929년부터 40년대로 넘어가기까지 20세기 역사상 가장 우울하고 어두운 경제 위기를 보내야했습니다. 대공황은 미국 경제 성장(GDP)의 4분의 1을 지워버렸고 많은 실업자를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본 포스트에서는 왜 경제 대공황이 발생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했는지를 다뤄보겠습니다.

 


<그림 1> 1930년대 GDP, 실업률, 물가

 

경제 대공황은 왜 발생하였는가?

경제 대공황의 시작은 증시의 폭락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검은 화요일이라고 부르는 1929년 10월 어느 날, 뉴욕 월 스트리트의 증시는 급락하기 시작합니다. 그 증시가 폭락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무리한 레버리지Leverage 투자에 대한 피로 축적이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전 6년간 증시는 끊임없이 상승했으며 그 상승에는 버블이 너무 많이 끼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로 가득했고 1928년 퇴임하던 미국 대통령 캐빈 쿨리지는 "평화와 만족, 번영기의 최고 기록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자동차, 라디오 등 신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등했고 미국 내 공장 수 또한 18만 4천 채에서 20만 7천채로, 생산 규모는 608억 달러에서 680억 달러로 늘었습니다. 얼핏 보았을 때는 생산성과 주식 시장의 확장이 병행되는 것처럼 보였죠. 그러나 문제는 빚이었습니다. 주식 시장이 과열되자 투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더 많은 수익을 위해 빚을 내서 자금을 불려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연쇄적인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림 2> 1930년대 기준 금리, 산업 생산률, S&P 지수

 

경제 위기가 발생한 상황에서 은행은 돈을 풀기보다는 긴축 재정금리 인상을 통해 대출을 회수하였고 이로 인해 경제 불황은 가속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예금자들이 돈을 회수하자 빠르게 빠져나가는 자금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중앙은행은 시중 은행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에 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하기 시작합니다. 민간에서는 당연히 생산성이 저감되고, 물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결국 엄청난 실업자가 양산되며 이러한 대공황은 4년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증시의 폭락 이외에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금본위제에 있습니다. 금본위제란 국가의 통화 가치를 일정한 금의 가치와 등가로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금의 보유가 곧 국력이 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금본위제 하에서 경제 위기가 발생했음에도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지 못했습니다. 금리가 낮아져서 통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다량의 금 유출이 우려되기 때문이었죠. 게다가 당시에는 보수적인 미국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도덕적 해이라고 느껴진 "무노동 무자본"의 주식 시장 버블은 반드시 없애야할 숙적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버블을 꺼트리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였고 오히려 미국에 의존도가 높은 호주, 아르헨티나 같은 신흥 국가에 연쇄적으로 경제 위기를 불러오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CNBC(좌), Wikipedia(우)

 

이 외에도 경제 대공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인과관계가 명확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죠. 당시의 국제적 상황과 부의 분배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여 복합적으로 경제가 붕괴된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경제 대공황은 어떻게 종식되었는가?

 

이미지 출처: Wikipedia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대공황이 이어졌습니다. 적극적 금융 정책보다는 시장 자유 경제주의에 머물며 미진한 태도를 보였던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 공황을 해결하기 위해 뉴딜 정책을 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학자 J.M.케인스의 관점을 빌려, 공황의 원인이 불충분한 수요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후 각 나라 정부는 경제에 직접 개입하여 금리를 인하하고 화폐를 공급하며 공공사업 시행으로 일자리를 창출합니다. 적극적인 조세 정책으로 부의 재분배를 수행하기도 했지요. 이를 위해 중앙 정부의 부채도 높아지고 적자도 생겼지만 당시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러한 결정은 파격적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자유 시장 경제 체제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한 미국의 기조를 정면으로 대치하는 결정이었으니까요.

 

 

적극적인 뉴딜 정책이 있었지만 주가나 물가 차트를 보면 1930년대 내내 대공황 발생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1938년에는 또 한번의 경기 후퇴(Recession)을 맞죠. 이 기간에는 실업률과 더불어 미국의 산업 생산이 직접적 타격을 받습니다. 뉴딜 정책으로 호황이던 산업 생산이 -30%에 육박하게 감소합니다. 이 당시에는 공공 부문 확장에 대한 민간 기업의 반발이 있었고 대기업 위주의 소위 일감 몰아주기 기조에 각종 노조의 파업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조세 정책으로 부의 재분배를 유도했지만 일부 계층에서는 부와 기회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AARP.org

 

유감스럽게도 대공황을 종식시킨 것은 전쟁(제2차 세계 대전, 1939.9.1~1945.9.2)이었습니다. 독일은 제1차 세계 대전 패전국으로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상황 등의 악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제적으로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적극적은 금융 정책을 펼치며 재기에 성공했고, 이후 튼튼한 경제력과 국방력을 바탕으로 히틀러의 광기가 전 세계를 휩쓸었죠.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각 나라들은 모든 자본과 생산을 군수 산업에 집중했고 오히려 산업이 되살아나는 효과가 생겼습니다. 미국 역시 중립국 선언을 폐지하고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뉴딜 정책으로 겪고 있던 각계 사회경제 계층 간의 갈등이 일시에 정리되고 전쟁에 집중하게 되었죠. 대공황으로 야기된 사회적 문제가 전쟁이라는 비극을 낳고 역설적이게도 그 전쟁을 통해 세상의 질서가 다시 정해지며 경제사회적 문제가 정리되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