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관하여

2020. 7. 9. 23:11개인 공간


 

아버지는,

22년간 몸담고 있던 기업에서 2008년 금융 위기와 함께 퇴직하셨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아침에 학교 갈 때 아버지가 집에 있는 모습이 상당히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외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안방에 놓아둔 컴퓨터 앞에 앉아 늘 모니터를 보고 계시던 모습이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때의 집안 분위기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그때 주식을 하셨다. 

아침 개장부터 저녁 폐장까지, 모아두신 돈으로 주식 투자를 하셨고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는 줄곧 갈등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이를 조금 먹고서야 퇴직한 가장의 부담감과 절박함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았지만, 

어린 나와 동생들은 그저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갈등의 원흉(?)이라고 생각한 주식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주식과 같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든 행위에 대해 부정하였다.

아니, 적어도 스스로는 부정한다고 믿었다.

 


 

혹자는 선순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늘 근면 성실과 노동의 가치를 배워왔으니, 

타의적으로라도 일확천금을 노리지 않고 성실히 사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여하튼 나는 꽤 성실하게 살았던 것 같다.

남들만큼 공부하고 노력하여 원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였다. 

그러나 뭔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 

내 주변에는 가상화폐로,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나의 돈에 대한 가치관이, 혹자가 말한 선순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누군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에 나 또한 그 바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덜컥 내가 번 돈을 가상화폐에 "투기"하였다.

내가 투기한 가상 화폐의 가치가 올라도 왜 오르는지 알 수 없었고, 떨어지면 기분만 나빴다. 

마치 우물에 동전을 던지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모습 같았다.

다만 내가 던진 것은 하나의 동전이 아니라 피땀이 섞인 월급 몇 개월치라는 것.. 그것이 달랐다.

 


 

그 때 알았다.

내가 주식과 일확천금이 싫다고 했던 것은 부모님의 갈등이 싫었을 뿐,

나 역시도 졸부들을 부러워하며 나에게도 그와 같은 행운이 찾아오길 빌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나는 내가 던진 동전을 나의 "행복한 꿈"과 맞바꾸었다는 사실을.

나는 결코 재물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을 확립한 적이 없었다.

우습게도 나는 이 사실을 아버지가 했던 주식보다 더 무모한, 가상화폐 투기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돈이란, 딱 그 정도 수준의 의미였다.

욕망이 발현되어 상상의 대상화가 된 그것.

실체가 없는 허상.

남들이 좇기에 나도 좇아야 하는.

행복이 마치 거기에 있을 것만 같은.

결국 나에게 돈은 "욕망 덩어리" 그 자체였다.

 


 

욕망은 중립적이다.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욕구만 따라사는 동물과 인간이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 나의 욕망은 내가 불행하다 말했다. 

행복한 상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욕망은 나를 비교와 좌절로 끌어내렸다.

그렇다면 만약,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누구처럼 요행이 따라 내 가상화폐가 대박이 터지고 졸부가 되었다면? 

나의 행복한 상상과 현실의 괴리는 좁혀졌을까?

 


 

아니.

나의 욕망 자체가 정제되지 않았으므로 욕망은 이내 다시 굶주릴 터였다. 

그리고 나는 그 욕망을 먹이기 위해 더 많은 내 살을 떼어주어야 했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나에게 돈이 주어지는 것은. 

실체 없는 어두운 감옥 속에 나를 스스로 가두는 것과 같다. 

현실은 없고 행복한 가짜 꿈만 있는 가짜 세상.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나는 성공하고 싶다' 이러한 날 것의 욕망 자체는 나를 살아있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나는 생의 열망을 느끼게 하는 욕망을 따라 살아간다. 

그러나 가공되지 않은 욕망의 파괴성을 가상화폐 투기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 값으로 꽤 많은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나의 욕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욕망은 가공되어야 한다.

더 진실하게, 더 아름답게 욕망은 가공되어야 한다. 

욕망은 나를 파괴하는 도구가 아니라 빛나는 보석이 되어야 한다. 

내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다시 시작할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돈에 관하여" 첫번째는 나의 욕망 직시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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